조선 개국공신 '심덕부묘'
조선 태조 이성계를 이야기하면
빠질수없는 인물중에 한사람이 바로
심덕부일것이다.
경기도 연천군 아미리(경기 연천군 미산면 숭의전로 39-1)에 심덕부묘가 있고
향토문화재(제29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집에서도 가까운곳인데
지나치면서도 생각만하다가
시간이 나서 둘러보기로했다.
차를대고 묘와 건물들을 바라보니
풍수를 모른다고해도 아늑한 느낌을 받을수 있었다.
이곳에 상주하면서 관리하시는분이
명당을 찾는 사람들이 자주 오는곳이라고한다.
심덕부(沈德符, 1328년 ~ 1401년)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무신, 공신이다.
고려 말, 이성계와 함께 신흥무인세력의 대표인물로서, 최영과 조민수가 제거된 이후인 공양왕 때에는 이성계에 이어 무장 서열 2위까지 올랐다.
자는 득지(得之). 호는 노당(蘆堂)·허강(虛江). 시호는 정안(定安)이며, 본관은 청송, 작위는 청성백(靑城伯)이다.
반면, 동생 악은공 심원부는 익재 이제현의 문인으로 신진사대부의 길을 걸었으며, 고려가 망하자 정몽주에 동조하며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켜 두문동72현과 고려5은(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농은 민안부,악은 심원부)의 한 사람이 되었다. 심원부의 3남 심천식은 포은 정몽주의 문인이기도 하였다.
청송 심씨 심덕부는,
고려말 위화도회군과 조선 개국에 참여한 개국공신이다.
조선의 한양 천도에 관련하여 한양 건설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를
실전에 사용하여 공을 세우기도 했는데,
진포에 처들어온 왜구를 물리쳤다.(진포대첩)
내려오면서 다시 건물뒤에 산을보니
병풍처럼 감싸고있는 모습에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올라오기전에 들었던 명당자리라는말이 생각나서
방향을 잠시 가늠해본다.
동쪽에서 해가 뜨면서 서쪽으로 질때까지
고르게 해를 받는 남향이다.
풍수는 잘 모르지만
명문가 집안의 내력만큼이나
자리또한 좋은 기운을 품고있는것 같아
부럽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