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들의자를 베란다에 내다놓고 아이를 무릎에 앉힌 채, 천천히 아이의 머리라도 땋아주며 나는 생각을 좀 해보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의 진실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라고 내가 희망을 걸었던 책의 첫구절에 써 있었지요. 나는 그 구절만 빼고 그 책에 씌어진 모든 것들을 다 믿었어요. 그 진실만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지요. 세상에, 이 세상에 단 한 가지쯤은 변하지 않고 늘 거기 있어주는 게 한 가지쯤 있었으면 했어요. 그게 사랑이든 사람이든 진실이든 혹은 내 자신이든…… 나는 기대어 서 있고 싶었고 존재는 머무르고 싶어하니까요…… 그러자 늙은 봉우리, 마추픽추 한 언덕빼기, 이제 영원히 그곳에 머물게 될 새들의 주검들 속에서 마지막까지 버티며 날개를 퍼덕이던 새 한 마리가 움직임을 멈추었고, 생을 맹세하고 막막한 대양 위를 날아가 잃어버린 도시를 찾아낸 그의 푸른 눈빛이 멍해지면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져내렸다. 이미 늦은 거야, 하는 생각 때문에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기분이었지만, 미안해, 정말, 미, 안, 해. 나는 적어도 시간만은 우리 앞에 오래 지속될 거라고 믿었어…… 천천히, 떨리는 손을 내밀어, 나는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노란 은행잎이 천천히 떨어져내리는 길이 이어져 있었다. 무덤 속처럼 적막한 긴 길이었다.
- 공지영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